목소리들의 밤     

1. 여기 한 채의 집이 있다.

 

집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층을 가지고 있다.

벽에는 나이테처럼 얼룩이 겹겹이 스며져 있고, 좁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어두운 복도를 밝히기에는 미약하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이름 없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때 공간을 채웠을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목소리는 이내 빛을 만들어내고 무심히 찾아온 밤의 구석들을 밝힌다. 잠들었던 집의 구석구석에 작은 마음들이 환영처럼 놓여진다.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따라 집안을 걸어 다녀본다. 차가운 무덤 위에 올려진 작은 꽃다발 같은 마음들이 일렁인다.

 

밤은 달여져 무덤 위에 놓인다.

달여진 밤이 무릎 위에 놓인다.

 

여기 밤을 달여 놓아두었다.

2. 집 앞에 담배와 간단한 생필품을 파는 두 평 남짓 되는 구멍가게가 있다. 주인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 까지 늘 같은 자세로 가게 안 TV를 시청하며 가게를 지킨다. 나는 한 번도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산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유리문 앞 선반에 커다란 조개껍질들이 놓여있다. 사우디에서 일하셨다던 할머니의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척 아끼셨다던 큼지막한 이국의 이미지. 이제는 팔려 가길 기다리며 먼지가 쌓여가는 빈 껍질들이 할머니처럼 늘 같은 자세로 물 없는 어항 속에 놓여 있다.

3.어둑해진 하늘 덕에 더 서늘한 느낌이 드는 홍콩의 오래된 묘지를 걸어 다녔다. 이국 땅에서 죽은 이방인의 묘비에는 까만 이끼와 먼지가 뒤덮여있지만 아무도 그 위의 이름이 잘 보이도록 정성스레 닦아주지 않는다. 아직 꽃이 시들지 않은 묘비들 위에는 떠난 사람들의 늙지 않는 흑백 얼굴이 남겨져 있다. 생을 기억하고자 세운 기념비와 그 추억으로 위안을 얻는 장소. 이름을 잃어가는 묘비와 그것들 사이사이 자라나는 나무, 풀더미를 보며 애써 기억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잠식하는 망각에 대해 생각했다. 묘지를 나서자 등 뒤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어설픈 덩어리로 떠올랐다.

이름들은 더 이상 말을 전할 수 없는 형태로 수풀 속에서 그저 놓여있었다.

4.시를 덮고 이미지를 바라본다.

이미지는 언어(텍스트)의 떠오름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끝에 남는 것은 이미지인가, 이미지가 불러오는 텍스트인가.

부산물이 사라지고 남은 이미지 , 감각의 형식

낱말은 재료와 형태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 전체가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낱말’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조형물들은 외부의 인상을 넘어 그것들 자체로 내밀한 공간에 놓여진다.

하지만 낱말에서 그 의미지시의 구체적 작용을 제거하면 힘도 사라진다.

낱말이 가진 본질을 살려야한다.

내밀한 공간 속에 부유하는 투명한 이미지를 만져본다.